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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의 전파 (1)

앳인온 2022. 8. 11. 2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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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엔 커피의 전파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약의 역할

커피 열매를 채취해 만든 커피는 에티오피아의 이웃나라 예멘으로 전해지면서 비로소 세련된 음료의 형태를 갖추게 되었습니다. 전래된 시기는 정확하지 않지만, 예멘으로 전해진 커피는 처음에 여러 가지 증상을 치료하는 약으로 취급되었습니다. 풍부한 향기와 감칠맛이 나는 음료가 사람들의 질병을 낫게 하자 커피의 인기는 날로 더해갔지만 그때까지도 커피는 야생의 나무에서만 채취되었습니다.

 

예멘 사람들은 야생 커피나무로는 수요량을 충당할 수 없는 정도가 되자 커피 재배에 직접 나섰습니다. 초기에는 주로 이슬람 사원의 뜰에서 비밀리에 재배되었다가 수도승에게 잠을 쫓는 약으로서 명성을 날리면서 이슬람교의 포교 수단으로 변모하여 인기가 이슬람 제국 전체로 퍼졌습니다.

 

커피의 대량 생산과 전파

13세기경에 이르러 이슬람 사원이 경제적 어려움에 직면하게 되자, 커피의 생산을 늘려 판매하게 됩니다. 그 결과 커피는 15~16세기경에 이슬람 문화권인 페르시아, 이집트, 시리아, 터키까지 수출되었습니다. 특히 당시 오스만투르크제국이라는 강력한 국가를 형성했던 터키는 그들의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이집트, 아라비아를 비롯해 흑해, 발칸반도까지 커피를 전하는 메신저가 되었습니다.

 

커피의 유럽 상륙

12세기 초 유럽인들은 이슬람 제국 안의 성지 '팔레스티나'와 '예루살렘'을 되찾기 위해 여덟 차례의 십자군 원정길에 나섰습니다. 결국 성지를 탈환하지는 못했지만 십자군 원정으로 유럽 사회는 많은 변화를 겪게 되었습니다. 교황의 권위보다 각국의 왕권이 강화되고, 동방과의 무역을 기초로 한 자유도시가 발달하게 된 것입니다. 당시 이 도시들은 동방, 즉 아시아와 아라비아의 많은 제품들을 수입하였고, 그중에 커피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십자군 원정 때 커피를 맛보게 된 유럽인들은 본국에 돌아가서도 커피를 계속 찾게 됩니다. 하지만 그들이 전쟁에 패한 이슬람교도인들의 커피를 자유롭게 마실수는 없었습니다.

 

커피에 대한 이런 선입견은 르네상스 시대에 이르러 사라지게 됩니다. 베네치아는 그때까지 이교도의 음료로 배척받던 커피를 밀무역 형태로 들여와 선보였다. 이를 계기로 커피의 매력을 알게 된 예술인들 사이에서 커피는 급속히 퍼지기 시작했다.

 

커피의 묘목의 전파

17세기 이전까지 유럽의 모든 커피는 100% 예멘의 모카항으로부터 수입되었습니다. 오늘날까지 '모카'라는 말이 자주 사용되는 것도 이런 역사적 배경 때문입니다. 유럽인들이 커피를 직접 생산하지 못하고 수입에 의존했던 이유는 이슬람의 강력한 통제와 유럽의 기후 환경 때문이었습니다. 이슬람 세계에서는 유럽에서 비싼 가격에 팔리는 주요 수출품인 커피가 외부 세계에 유출되지 않도록 종자나 묘목을 철저히 관리했습니다. 게다가 이러한 통제를 뚫고 커피의 묘목을 훔쳐냈다 하더라도 서리가 내리는 유럽의 기후 환경에는 커피가 자랄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유럽인들이 커피 재배가 가능한 아프리카, 아시아, 라틴아메리카 등지에 식민지를 확보하면서 상황은 달라졌습니다. 이슬람 세계의 필사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커피나무는 전 세계로 순식간에 퍼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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